작가와의 대화. 時水님의 블로그에 트랙백 했습니다.
이하 원문.
Q. 이외수 선생님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작, 다독, 다상, 그리고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외에 또 글쓰기에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민규(이하 박): 글짓기에 필요한 세 가지 말씀해 주셨구나. 그 세 가지도 굉장히 많은 거다. 다른 방법을 찾기보다 그 세 가지를 꾸준히 계속해 나가기가 어렵다. 많은 방법을 알려고 하지 말라. 세상의 방법은 모두 한 길로 통한다. 꾸준히 충실히 해 나가라.
김언수(이하 김): 힘을 모아야 하는 지점이 있다. 그 때 힘을 모으라. 그 때를 기다리라.
Q. 소설과 영화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운가?
천명관(이하 천): 소설은 가장 돈이 안 드는 경제적인 창작의 방법이다. 소설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다.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다.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 한 편 만들기 위해선 최소한 50억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말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진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는 게 힘들다. 모든 영화감독들이 관객이 엄청 많이 드는 영화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보여 주고 창조성이 있는 그런 작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한다.
Q. 박민규 작가는 야구 중에서 어느 팀, 어느 선수, 어느 감독을 좋아하는가?
박민규: 어렸을 때는 호불호가 무척 분명했다. 좋아하는 감독, 선수, 가수. 그 외에는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었다. 나이가 드니까 변하는 건, 실은 모두 다 좋은 거더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팀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다 같이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뛰고 달리고 공을 던지고 하는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사소한 행동 같지만 복잡하고 아름다운 동작들...양 팀 9명의 선수들, 심판, 관중. 인간들이 모여, 보고 즐기고 웃고 달리는 그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운 것 같다. 어느 쪽에서 안타를 쳐도 기분이 좋다.
Q. 김언수 작가에게: 자신의 소설(캐비닛)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
김: 작가로서의 pride도 없지만, 소설에 대해 짧게 얘기해 달라는 질문이 제일 곤혹스럽다. 짧게 얘기해 줄 수 있다면 뭐하러 300페이지나 썼겠는가. A4 한 장으로 요약해 줄 수 있으면 뭐하러 300페이지나 썼겠는가.
(질문한 사람, 큰 소리로 "죄송합니다")
Q. 내 책이, 내 시나리오가 처음 깔렸을 때의 기분, 소감은?
천: 나는 단순했다. 내 책이 책이 되어서 나오고 내 이름이 TV에 오르고, 극장 간판에 걸리고...부모님한테 효도하는 것 같았다. 평생 결혼도 안 하고, 작가 하겠다고 글 쓰겠다고 왔다갔다 하고. 어느 순간에 내 책이 나오고 신문 기사가 나오고...부모님께 그런 면에서 효도했다. 그게 나에게는 정말 큰 위안이 되었다. 작가로서 왜소한 생각일지 모르겠는데, 현실적으로 부모님이 나를 믿어 주시게 된 것이 가장 좋았다.
박: 명관이형 말씀 들으니까 아마 이런 생각하시는 작가분들 많을 것이다. 글 쓰는 사람들은 대개 정상적인 효도를 잘 못한다. 성장 과정도 그렇고. 나는 첫 책이 나오기 보름 정도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2주만 더 살아계셨다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기서 매수업 시작 때 명상을 하면서 미래의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본다고 했는데, 그런 자기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총을 쏘건 활을 쏘건 뭔가 진행시키려면 과녁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전을 할 때도 먼 곳을 바라보지 않나? 나도 굉장히 많은 직업을 전전했고 정상적인 출퇴근 시간을 7-8년 전전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져서 32살 때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답이 없는 얘기다. 이상한 행동인데, 나는 당시 아무것도 아니었다. 등단한 상태도 아니었고.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 자신이 작가라는 것에 대한 완벽한 믿음이 있었다. 이미 작가라고 생각을 했다. 그게 많은 에너지가 된 것 같다. 과녁이 있으면 설사 빗맞는다 해도 괜찮은 것 같다.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한다. 글 쓰는 사람을 만나 보면 굉장히 겸손하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더 배우고 싶습니다.” 좋다. 그러나 그게 과연 바른 태도일까? 배우고 싶다는 것...굉장히 겸손한 태도긴 하지만 이미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작가 지망생이 다른 작가들에게 싸인 받으러 다니고 그러지 말라. 같은 작가끼리 싸인 받고 그러는 거 아니다. 이미 작가가 되어 있으라. 등단이라는 것. 시설이고 장치다. 등단은 그 일을 잘하다 보면 저절로 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시기가 있다. 이를테면 유전을 생각하면, 유전에서 시추하는 시설을 세우고 기름을 뽑지 않나. 시추하는 시설/장비가 일종의 등단이라는 절차라고 생각한다. 공식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은 공식적인 유전이 되는 거고. 근데 그 시설과 장비에 굉장히 집착을 하더라. 등단을 하고 싶고 작가가 되고 싶고 내 책이 서점에 나오고 하는 것에 너무 집착한다.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을 하는 사람은 없다. 운전을 하기 위해 운전 면허를 따는 것 아닌가? 시설에 집착하고 절차에 집착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유전 안에 들어 있는 석유의 양이다. 실은 석유는 얼마 매장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설부터 설치하고 기름을 뽑아 버리면 기름은 금세 없어져 버린다. 시설은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기름을 뽑아내 버린다. 정말 기름이 많은 유전은 땅에서 자연히 기름이 뿜어져 나온다. 언제 작가가 되고 등단을 하는가는 저절로 되는 거다. 이미 작가인 우리 개개인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석유가 있는가, 얼만큼 석유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 석유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뭔가가 쌓이고 썩고 퇴석되고...기나긴 시간에 걸쳐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인생 가운데서도 그런 과정이 있을 것이다. 상처건 콤플렉스건 열정이건 더 많이 쌓이고 더 많이 퇴석되고 글로 변환될 수 있는 재료가 되기를..그 과정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교보에 가서 책이 나온 걸 봤는데 무서웠다. 생각보다 기쁘지 않고 무섭다. 어떤 잘못을 해놓은 것 같은데 이제 수정할 수도 없고 변명할 수 없고....책이 일단 나오면 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잘 안 바뀐다. 그 책에 빼도박도 못할 사소한 잘못들이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우리 모두가 너무 빨리 등단을 하려 하고 작가가 되려 하고...실제로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다. 책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도 하나도 안 중요하다. 대중들은 처음 나온 책을 중요하게 보인다. 대부분의 소설책은 3000부도 못 판다. 첫 책이 좋으면 그 다음에 한 번 더 봐주는 것뿐이다. 글을 쓰려면 내부에 무엇을 채워 나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라. 내면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채워 놨다면 새 책이 나왔을 때 덜 무서울 수도 있을 것이다.
Q. 박민규 작가에게: 1) 예전에 자주 쓰고 다니던 고글 어디서 구입하셨는지, 2) 매력적인 문체를 갖기 위해서 따로 훈련 방법이나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1) 모으는 걸 좋아한다. 2차대전 때 디자인된 고글. 2차대전의 디자인을 좋아한다. 해외 경매 사이트 같은 데서 구입하기도 하고 유럽 여행 가서도 사오고...
2) 문체라는 건, 굉장히 방대한 질문인데...어떻게든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의 공통적인 문제 중의 하나가 남과의 비교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자기 자신의 비교 대상은 자기 자신인데... 문체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칼라를 좋아하는가. 단어에도, 칼라가 있다. 강렬한 색인가 파스텔인가. 문체는 글자의 모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굉장히 미묘한 것들이다. 율(리듬)도 중요하다. 그것 역시 개개인에 따라 모두 다르다. 락(Rock) 공연장에 가 보면 다들 머리를 흔들어도 앞뒤로 흔드는 사람 있고 양옆으로 흔드는 사람 있다. 첫 박을 강하게 치는 사람도 있고 뒷 박을 강하게 치는 사람도 있다. 문체...분명히 리듬이 있고 율이 있다. 엇박도 있고. 단어가 가진 밀도에 따라 짧지만 긴 것도 있고 길지만 짧게 넘어간 것도 있다. 악보 같기도 하다. 여러 가지 리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책, 음악, 미술 감상 모두가 어마어마한 훈련이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어떤 리듬에 맞춰 그것을 몸에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의 리듬이 율로 나온다. 숨과 같은 거다. 요지는, 남의 문체에서 자기의 문체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가 확장되어서 자기가 문체로 나오는 거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비교하고 자기 자신을 생각하라. 필사, 카피,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게 더 중요하다.
Q. 국내에 일본 문학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한국 문학보다도 일본 문학을 읽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대응책은?
김: 우리 소설이 일본 소설의 수준과 실력보다 20년 정도 밀려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본 소설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더 재밌고 유익하다는 얘기 아닌가. 솔직하게 인정하고 현실적인 엄정한 판단 위에서 우리가 더 노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깜찍한 상상력에 놀란다. 일본 문화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 물론 우리가 뒤처져 있다는 그 20년이라는 게 정말 2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Q. 박민규 작가에게: 글을 쓸 생각이 있어서 문창과를 갔을 텐데 왜 서른두 살 때까지 기다렸나? 지금 구상중인 작품은 무엇인가?
박: 중대 문창과에 갔었다. 원래 대학을 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등급이 1-15등급이 있었는데 나는 15등급이었다. 모의고사를 치면 340점 만점에 100점을 넘은 적이 없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적는 거다. 그런 인간이었다. 내가 문창과를 가게 된 이유는, 어느 날 고2 때 만화방에서 만화 보다가 새벽에 차 다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몹시 지겨웠다. 그 때 이외수의 [겨울나기]가 만화방에 있었다. 만화방에 소설이 있다는 건 초현실적인 일이었다. 그 때 읽은 작품이 [훈장]이었다.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그 새벽녘에 만화방에서 나오면서 어쨌거나 인간은 예술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굴뚝 같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예술대학 쪽으로 알아보니까, 음대나 미대나 모든 예술 방문 쪽은 꾸준한 레슨을 받아야만 가능하더라. 레슨을 안 받고 갈 수 있는 데가 유일하게 문창과. 내가 입시를 볼 때까지만 문창과는 실기가 50프로였다. 그 다음해였다면 못 갔을 거다. 가게 되었는데 대학 생활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운동권에서 데모를 한창 할 때고 강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휴교...1학년, 2학년 때 그렇게 습관이 되니까 3-4학년이 되어도 학교에 안 가게 되더라. 거의 수업을 들은 적이 없다. 소설 같은 것을 쓴 적이 없다. 하지만 시를 되게 좋아해서 시 습작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집에나 닥치는 불상사--집안이 망하고 빚더미가 생기고...--가 들이닥쳤다. 무작정 돈을 벌기 시작했다. 전공 불문, 나이 불문, 용기와 패기가 있으면 된다는 해운물산에서 영업사원으로 돈을 벌기 위해 미친듯이 다녔다. 90년대 10년간은 책 한 줄 못 봤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맞벌이를 하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써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고. 그런데 너무너무 쓰고 싶었다. 사회 생활을 7-8년 한 인간이라 문체 모방이나 그런 건 남아 있지 않았다. 돈 많이 벌고 모으는 것에 집중하다가 그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집사람한테 미안해서 말도 못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글 쓰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애도 태어났는데 사기 아닌가. 그런데 나중엔 병이 되겠더라. 집사람한테 털어놨다.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글을 쓰고 싶다고. 의외로 집사람이 흔쾌하게 써 보라고 했다. 습작을 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왜 그렇게 글을 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이 일이 너무나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많은 직업을 가져 봤는데 작가라는 직업은 가장 축복받은 직업이다. 인간이 “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며 살 수 있다. 이런 고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축복 같다. 믿기지가 않는다. 가급적 열심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SF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있다. 일단 다 한번 써 보려고 하고 있다. 예전엔 꼰대라고 생각했던 이른바 순수 리얼리즘 문학이건 SF건 다 한번 써 보고 싶다. 여러 가지를 한 번씩 습득해 보고 싶다. 써 보고 싶다. SF 쪽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 쪽을 많이 써 보고 싶다. 궁극엔 장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장르를 생각하지 않으며,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게 될 것 같다. 그게 어떤 건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되는 건 삶의 문제인데, 돌이켜보면 글을 쓰면서 “그러므로” 글을 썼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건이 갖춰지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해서 글을 썼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 왔던 것 같다. 돈이 없기도 하고, 잘 안 될 때도 있고, 뭔가 다른 복잡한 일들이 현실에서 생겨나고...언제나 “그래서”와 “그러므로”를 성립되지 않게 만들 일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들도 정말 복잡한 문제를 겪고 험난한 길을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써 나가시기 바란다.
Q. 세 작가들의 작품에서 정말 신선하고 획기적이고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신선한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천: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하는 건 작가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었지, 이런 우연을 거쳐서 이렇게 된 것 같아’라고 추론할 수는 있지만. 많은 경우, ‘내가 어떡하다 이렇게 오게 되었지’ 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게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처음에 플롯을 짜고 인물/사건을 이렇게 해야지 계획해도 우연적으로 어느 순간에 뜻하지 않은 길로 가게 되기도 한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편이다. 우연적인 창작의 과정들을.
박: 심심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심심해지면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너무 심심하다 보면 일이라도 하고 싶고 그렇다. 너무 심심해서 별 생각을 다 하다가 이제 땀 좀 흘려 보자, 일 좀 해 보자 그러면서 막 쓰게 되는 것 같다. 열심히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게 다는 아니다. 소설은 새마을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심심한 것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김: 빚이 있었다. 스물일곱에 시작되었는데. 빚이 5-600만원이 되면 그래도 열심히 한번 살아 보자, 그래서 갚자 하는 생각이 드는데 3000만원 넘어가면 갑갑해진다. 4800만원이 되면, 4800이나 4900이 다 똑같아 보여서, 그냥 내가 쏠게 이런다. 처음에 카드빚 80만원을 11개월 만에 1250만원짜리 한도를 만들었다. 앞뒤로 돌리고. 월급을 통으로 돌려서 고스란히 갚았다. 어느 순간 갚을 능력이 없게 되었다.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폐교로 만든 고시원으로 도망갔다. 밥은 세 끼 준다. 내가 도망가면 내가 해야 할 일을 가족들이 해야 한다. 그래서 고시원 밖의 일을 상상하기가 싫었다. 같이 소설 쓰던 친구가 내가 진짜 소설 쓰러 고시원 간 줄 알고 매달 50만원씩 보내줬다. 그 돈으로 폐교용 고시원에 있었다. 현실로 나가기 싫었다. 그래서 아마 내 소설을 사람들이 환상적 소설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하지만 무슨 소리냐? 나에겐 분명 리얼리즘 소설이다.(웃음)
Q. 시나리오 영상 작업을 하다가 소설로 들어왔는데, 그 둘 간에 큰 차이가 있는가?
천: 기술적인 문제인데, 드라마나 영화는 그만의 룰이 있다. 드라마는 신(scene)과 대사. 거의 대사로 처리된다. 장소의 제약, 시간성, 성격화를 보여 줄 때도 소설과는 분명히 다르다. 소설은 제일 자유로운 매체다. 드라마는 제작비 문제도 있고 현실적인 것이 많이 고려가 된다. 소설을 쓰는 게 즐겁다. 시나리오나 드라마는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그런 룰 안에서 작업을 수행하다 보니까. 반드시 재밌어야 하니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어야 하니까. 모든 영화와 드라마는 그것이 대전제다. 그것을 벗어나면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어마어마한 압박/스트레스가 있다. “소설을 쓰는 게 어렵냐? 시나리오를 쓰는 게 어렵냐?” 하면 시나리오가 어렵다라고 한다. 소설은 자유롭게 쓰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드라마 스킬을 익히고 습득하는 일은 소설을 써서 문단에 등단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소설로 등단하던 날에 모험을 했다. 마흔 가까이였는데, 성과가 없었다. 아무 성취가. 모험을 한 게 뭐냐면. 시나리오 한 편, 드라마 한 편, 소설 한 편 써서 모든 장르의 공모에 넣었다. 다 떨어졌다. 소설만 됐다. 그 당시 소설 경쟁률은 300:1 정도였다. 시나리오는 500:1, 드라마는 3600:1 정도 되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력이 드라마를 쓰려고 한다. 경쟁이 훨씬 치열하다. 잘 되면 얻는 게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학습 같은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누구나 다 소설가만 되는 건 아니잖나. 다양한 직업이 있으니까.
Q. 혹시 문학이라는 걸 한 번도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면 인생이 어땠을까?
김: 내가 고1 전까지는 참신하고 건전하고 똘망했다. 그대로 유지했다면 지금쯤 연봉 6000 정도 받고 그랬겠지. 아마도 바람직한 형태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내가 진해에 사는데 밤을 새고 부스스한 머리로 베란다에서 담배 피고 있으면 그 앞 조선소에 아침 7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사람들이 쏟아졌다. 그 사람들이 나를 보면 뭐라고 했을까? 문학을 안 했다면 그런 사람들이 되어 있었겠지.
박: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상태가 안 좋긴 해도 나는 뇌가 있다. 2MB는 넘고.(웃음) 책도 안 보고 책을 잘 모른다 해도 음악은 듣겠지. 결국엔 모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천: 나는 직장 생활을 참 오래 했다. 군대 제대한 이후에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탈했다.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나이 서른한 살에 갑자기 ‘이게 내 삶이 아닌 것 같아’ 하고 직장을 때려치고 충무로 영화판에 들어가 10년 살다가 문학을 하게 됐다. 문학은 창작의 한 방법이었다. 영화와 문학이 다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전의 직장일은 그야말로 먹고사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일탈의 길을 걸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한다. 그 때 직장 생활을 잘 했다. 나는 대학을 안 나왔는데,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영업밖에 없다. 영업을 잘 했다. 그래서 그때 돈도 잘 벌었다. 그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 꾸준하게 직장 생활을 했었다면. 위기도 있고 인생은 어느덧 지루해지고 여러 가지 일도 진행되겠지만.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그렇게 40대 중반의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40대 중반의 가장으로서의 평범한 삶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하 원문.
Q. 이외수 선생님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작, 다독, 다상, 그리고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외에 또 글쓰기에 필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민규(이하 박): 글짓기에 필요한 세 가지 말씀해 주셨구나. 그 세 가지도 굉장히 많은 거다. 다른 방법을 찾기보다 그 세 가지를 꾸준히 계속해 나가기가 어렵다. 많은 방법을 알려고 하지 말라. 세상의 방법은 모두 한 길로 통한다. 꾸준히 충실히 해 나가라.
김언수(이하 김): 힘을 모아야 하는 지점이 있다. 그 때 힘을 모으라. 그 때를 기다리라.
Q. 소설과 영화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운가?
천명관(이하 천): 소설은 가장 돈이 안 드는 경제적인 창작의 방법이다. 소설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다. 쓰고 싶은 걸 쓸 수 있다.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 한 편 만들기 위해선 최소한 50억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말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진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는 게 힘들다. 모든 영화감독들이 관객이 엄청 많이 드는 영화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보여 주고 창조성이 있는 그런 작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한다.
Q. 박민규 작가는 야구 중에서 어느 팀, 어느 선수, 어느 감독을 좋아하는가?
박민규: 어렸을 때는 호불호가 무척 분명했다. 좋아하는 감독, 선수, 가수. 그 외에는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었다. 나이가 드니까 변하는 건, 실은 모두 다 좋은 거더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팀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다 같이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뛰고 달리고 공을 던지고 하는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사소한 행동 같지만 복잡하고 아름다운 동작들...양 팀 9명의 선수들, 심판, 관중. 인간들이 모여, 보고 즐기고 웃고 달리는 그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운 것 같다. 어느 쪽에서 안타를 쳐도 기분이 좋다.
Q. 김언수 작가에게: 자신의 소설(캐비닛)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달라.
김: 작가로서의 pride도 없지만, 소설에 대해 짧게 얘기해 달라는 질문이 제일 곤혹스럽다. 짧게 얘기해 줄 수 있다면 뭐하러 300페이지나 썼겠는가. A4 한 장으로 요약해 줄 수 있으면 뭐하러 300페이지나 썼겠는가.
(질문한 사람, 큰 소리로 "죄송합니다")
Q. 내 책이, 내 시나리오가 처음 깔렸을 때의 기분, 소감은?
천: 나는 단순했다. 내 책이 책이 되어서 나오고 내 이름이 TV에 오르고, 극장 간판에 걸리고...부모님한테 효도하는 것 같았다. 평생 결혼도 안 하고, 작가 하겠다고 글 쓰겠다고 왔다갔다 하고. 어느 순간에 내 책이 나오고 신문 기사가 나오고...부모님께 그런 면에서 효도했다. 그게 나에게는 정말 큰 위안이 되었다. 작가로서 왜소한 생각일지 모르겠는데, 현실적으로 부모님이 나를 믿어 주시게 된 것이 가장 좋았다.
박: 명관이형 말씀 들으니까 아마 이런 생각하시는 작가분들 많을 것이다. 글 쓰는 사람들은 대개 정상적인 효도를 잘 못한다. 성장 과정도 그렇고. 나는 첫 책이 나오기 보름 정도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2주만 더 살아계셨다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기서 매수업 시작 때 명상을 하면서 미래의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본다고 했는데, 그런 자기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총을 쏘건 활을 쏘건 뭔가 진행시키려면 과녁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전을 할 때도 먼 곳을 바라보지 않나? 나도 굉장히 많은 직업을 전전했고 정상적인 출퇴근 시간을 7-8년 전전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져서 32살 때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답이 없는 얘기다. 이상한 행동인데, 나는 당시 아무것도 아니었다. 등단한 상태도 아니었고.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 자신이 작가라는 것에 대한 완벽한 믿음이 있었다. 이미 작가라고 생각을 했다. 그게 많은 에너지가 된 것 같다. 과녁이 있으면 설사 빗맞는다 해도 괜찮은 것 같다.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한다. 글 쓰는 사람을 만나 보면 굉장히 겸손하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는 더 배우고 싶습니다.” 좋다. 그러나 그게 과연 바른 태도일까? 배우고 싶다는 것...굉장히 겸손한 태도긴 하지만 이미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작가 지망생이 다른 작가들에게 싸인 받으러 다니고 그러지 말라. 같은 작가끼리 싸인 받고 그러는 거 아니다. 이미 작가가 되어 있으라. 등단이라는 것. 시설이고 장치다. 등단은 그 일을 잘하다 보면 저절로 되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시기가 있다. 이를테면 유전을 생각하면, 유전에서 시추하는 시설을 세우고 기름을 뽑지 않나. 시추하는 시설/장비가 일종의 등단이라는 절차라고 생각한다. 공식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은 공식적인 유전이 되는 거고. 근데 그 시설과 장비에 굉장히 집착을 하더라. 등단을 하고 싶고 작가가 되고 싶고 내 책이 서점에 나오고 하는 것에 너무 집착한다.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 운전을 하는 사람은 없다. 운전을 하기 위해 운전 면허를 따는 것 아닌가? 시설에 집착하고 절차에 집착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유전 안에 들어 있는 석유의 양이다. 실은 석유는 얼마 매장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설부터 설치하고 기름을 뽑아 버리면 기름은 금세 없어져 버린다. 시설은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하고 기름을 뽑아내 버린다. 정말 기름이 많은 유전은 땅에서 자연히 기름이 뿜어져 나온다. 언제 작가가 되고 등단을 하는가는 저절로 되는 거다. 이미 작가인 우리 개개인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석유가 있는가, 얼만큼 석유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 석유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뭔가가 쌓이고 썩고 퇴석되고...기나긴 시간에 걸쳐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인생 가운데서도 그런 과정이 있을 것이다. 상처건 콤플렉스건 열정이건 더 많이 쌓이고 더 많이 퇴석되고 글로 변환될 수 있는 재료가 되기를..그 과정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교보에 가서 책이 나온 걸 봤는데 무서웠다. 생각보다 기쁘지 않고 무섭다. 어떤 잘못을 해놓은 것 같은데 이제 수정할 수도 없고 변명할 수 없고....책이 일단 나오면 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잘 안 바뀐다. 그 책에 빼도박도 못할 사소한 잘못들이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우리 모두가 너무 빨리 등단을 하려 하고 작가가 되려 하고...실제로 그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하다. 책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도 하나도 안 중요하다. 대중들은 처음 나온 책을 중요하게 보인다. 대부분의 소설책은 3000부도 못 판다. 첫 책이 좋으면 그 다음에 한 번 더 봐주는 것뿐이다. 글을 쓰려면 내부에 무엇을 채워 나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라. 내면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채워 놨다면 새 책이 나왔을 때 덜 무서울 수도 있을 것이다.
Q. 박민규 작가에게: 1) 예전에 자주 쓰고 다니던 고글 어디서 구입하셨는지, 2) 매력적인 문체를 갖기 위해서 따로 훈련 방법이나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1) 모으는 걸 좋아한다. 2차대전 때 디자인된 고글. 2차대전의 디자인을 좋아한다. 해외 경매 사이트 같은 데서 구입하기도 하고 유럽 여행 가서도 사오고...
2) 문체라는 건, 굉장히 방대한 질문인데...어떻게든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의 공통적인 문제 중의 하나가 남과의 비교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자기 자신의 비교 대상은 자기 자신인데... 문체는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자기가 어떤 칼라를 좋아하는가. 단어에도, 칼라가 있다. 강렬한 색인가 파스텔인가. 문체는 글자의 모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굉장히 미묘한 것들이다. 율(리듬)도 중요하다. 그것 역시 개개인에 따라 모두 다르다. 락(Rock) 공연장에 가 보면 다들 머리를 흔들어도 앞뒤로 흔드는 사람 있고 양옆으로 흔드는 사람 있다. 첫 박을 강하게 치는 사람도 있고 뒷 박을 강하게 치는 사람도 있다. 문체...분명히 리듬이 있고 율이 있다. 엇박도 있고. 단어가 가진 밀도에 따라 짧지만 긴 것도 있고 길지만 짧게 넘어간 것도 있다. 악보 같기도 하다. 여러 가지 리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책, 음악, 미술 감상 모두가 어마어마한 훈련이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어떤 리듬에 맞춰 그것을 몸에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의 리듬이 율로 나온다. 숨과 같은 거다. 요지는, 남의 문체에서 자기의 문체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가 확장되어서 자기가 문체로 나오는 거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비교하고 자기 자신을 생각하라. 필사, 카피,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게 더 중요하다.
Q. 국내에 일본 문학이 많이 들어와 있는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한국 문학보다도 일본 문학을 읽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대응책은?
김: 우리 소설이 일본 소설의 수준과 실력보다 20년 정도 밀려 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본 소설을 읽는다는 건 그만큼 더 재밌고 유익하다는 얘기 아닌가. 솔직하게 인정하고 현실적인 엄정한 판단 위에서 우리가 더 노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깜찍한 상상력에 놀란다. 일본 문화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 물론 우리가 뒤처져 있다는 그 20년이라는 게 정말 2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Q. 박민규 작가에게: 글을 쓸 생각이 있어서 문창과를 갔을 텐데 왜 서른두 살 때까지 기다렸나? 지금 구상중인 작품은 무엇인가?
박: 중대 문창과에 갔었다. 원래 대학을 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등급이 1-15등급이 있었는데 나는 15등급이었다. 모의고사를 치면 340점 만점에 100점을 넘은 적이 없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적는 거다. 그런 인간이었다. 내가 문창과를 가게 된 이유는, 어느 날 고2 때 만화방에서 만화 보다가 새벽에 차 다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몹시 지겨웠다. 그 때 이외수의 [겨울나기]가 만화방에 있었다. 만화방에 소설이 있다는 건 초현실적인 일이었다. 그 때 읽은 작품이 [훈장]이었다.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그 새벽녘에 만화방에서 나오면서 어쨌거나 인간은 예술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굴뚝 같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예술대학 쪽으로 알아보니까, 음대나 미대나 모든 예술 방문 쪽은 꾸준한 레슨을 받아야만 가능하더라. 레슨을 안 받고 갈 수 있는 데가 유일하게 문창과. 내가 입시를 볼 때까지만 문창과는 실기가 50프로였다. 그 다음해였다면 못 갔을 거다. 가게 되었는데 대학 생활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운동권에서 데모를 한창 할 때고 강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휴교...1학년, 2학년 때 그렇게 습관이 되니까 3-4학년이 되어도 학교에 안 가게 되더라. 거의 수업을 들은 적이 없다. 소설 같은 것을 쓴 적이 없다. 하지만 시를 되게 좋아해서 시 습작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집에나 닥치는 불상사--집안이 망하고 빚더미가 생기고...--가 들이닥쳤다. 무작정 돈을 벌기 시작했다. 전공 불문, 나이 불문, 용기와 패기가 있으면 된다는 해운물산에서 영업사원으로 돈을 벌기 위해 미친듯이 다녔다. 90년대 10년간은 책 한 줄 못 봤다. 그 후 결혼을 하고 맞벌이를 하고.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써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고. 그런데 너무너무 쓰고 싶었다. 사회 생활을 7-8년 한 인간이라 문체 모방이나 그런 건 남아 있지 않았다. 돈 많이 벌고 모으는 것에 집중하다가 그저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집사람한테 미안해서 말도 못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글 쓰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애도 태어났는데 사기 아닌가. 그런데 나중엔 병이 되겠더라. 집사람한테 털어놨다.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글을 쓰고 싶다고. 의외로 집사람이 흔쾌하게 써 보라고 했다. 습작을 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왜 그렇게 글을 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이 일이 너무나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많은 직업을 가져 봤는데 작가라는 직업은 가장 축복받은 직업이다. 인간이 “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며 살 수 있다. 이런 고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축복 같다. 믿기지가 않는다. 가급적 열심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SF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있다. 일단 다 한번 써 보려고 하고 있다. 예전엔 꼰대라고 생각했던 이른바 순수 리얼리즘 문학이건 SF건 다 한번 써 보고 싶다. 여러 가지를 한 번씩 습득해 보고 싶다. 써 보고 싶다. SF 쪽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 쪽을 많이 써 보고 싶다. 궁극엔 장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장르를 생각하지 않으며,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게 될 것 같다. 그게 어떤 건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되는 건 삶의 문제인데, 돌이켜보면 글을 쓰면서 “그러므로” 글을 썼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건이 갖춰지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해서 글을 썼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 왔던 것 같다. 돈이 없기도 하고, 잘 안 될 때도 있고, 뭔가 다른 복잡한 일들이 현실에서 생겨나고...언제나 “그래서”와 “그러므로”를 성립되지 않게 만들 일들이 산재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들도 정말 복잡한 문제를 겪고 험난한 길을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써 나가시기 바란다.
Q. 세 작가들의 작품에서 정말 신선하고 획기적이고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신선한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천: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하는 건 작가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처음에 이렇게 생각했었지, 이런 우연을 거쳐서 이렇게 된 것 같아’라고 추론할 수는 있지만. 많은 경우, ‘내가 어떡하다 이렇게 오게 되었지’ 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게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처음에 플롯을 짜고 인물/사건을 이렇게 해야지 계획해도 우연적으로 어느 순간에 뜻하지 않은 길로 가게 되기도 한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편이다. 우연적인 창작의 과정들을.
박: 심심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심심해지면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너무 심심하다 보면 일이라도 하고 싶고 그렇다. 너무 심심해서 별 생각을 다 하다가 이제 땀 좀 흘려 보자, 일 좀 해 보자 그러면서 막 쓰게 되는 것 같다. 열심히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는 게 다는 아니다. 소설은 새마을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심심한 것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김: 빚이 있었다. 스물일곱에 시작되었는데. 빚이 5-600만원이 되면 그래도 열심히 한번 살아 보자, 그래서 갚자 하는 생각이 드는데 3000만원 넘어가면 갑갑해진다. 4800만원이 되면, 4800이나 4900이 다 똑같아 보여서, 그냥 내가 쏠게 이런다. 처음에 카드빚 80만원을 11개월 만에 1250만원짜리 한도를 만들었다. 앞뒤로 돌리고. 월급을 통으로 돌려서 고스란히 갚았다. 어느 순간 갚을 능력이 없게 되었다.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폐교로 만든 고시원으로 도망갔다. 밥은 세 끼 준다. 내가 도망가면 내가 해야 할 일을 가족들이 해야 한다. 그래서 고시원 밖의 일을 상상하기가 싫었다. 같이 소설 쓰던 친구가 내가 진짜 소설 쓰러 고시원 간 줄 알고 매달 50만원씩 보내줬다. 그 돈으로 폐교용 고시원에 있었다. 현실로 나가기 싫었다. 그래서 아마 내 소설을 사람들이 환상적 소설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하지만 무슨 소리냐? 나에겐 분명 리얼리즘 소설이다.(웃음)
Q. 시나리오 영상 작업을 하다가 소설로 들어왔는데, 그 둘 간에 큰 차이가 있는가?
천: 기술적인 문제인데, 드라마나 영화는 그만의 룰이 있다. 드라마는 신(scene)과 대사. 거의 대사로 처리된다. 장소의 제약, 시간성, 성격화를 보여 줄 때도 소설과는 분명히 다르다. 소설은 제일 자유로운 매체다. 드라마는 제작비 문제도 있고 현실적인 것이 많이 고려가 된다. 소설을 쓰는 게 즐겁다. 시나리오나 드라마는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그런 룰 안에서 작업을 수행하다 보니까. 반드시 재밌어야 하니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어야 하니까. 모든 영화와 드라마는 그것이 대전제다. 그것을 벗어나면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어마어마한 압박/스트레스가 있다. “소설을 쓰는 게 어렵냐? 시나리오를 쓰는 게 어렵냐?” 하면 시나리오가 어렵다라고 한다. 소설은 자유롭게 쓰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드라마 스킬을 익히고 습득하는 일은 소설을 써서 문단에 등단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소설로 등단하던 날에 모험을 했다. 마흔 가까이였는데, 성과가 없었다. 아무 성취가. 모험을 한 게 뭐냐면. 시나리오 한 편, 드라마 한 편, 소설 한 편 써서 모든 장르의 공모에 넣었다. 다 떨어졌다. 소설만 됐다. 그 당시 소설 경쟁률은 300:1 정도였다. 시나리오는 500:1, 드라마는 3600:1 정도 되었다.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력이 드라마를 쓰려고 한다. 경쟁이 훨씬 치열하다. 잘 되면 얻는 게 있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학습 같은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누구나 다 소설가만 되는 건 아니잖나. 다양한 직업이 있으니까.
Q. 혹시 문학이라는 걸 한 번도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면 인생이 어땠을까?
김: 내가 고1 전까지는 참신하고 건전하고 똘망했다. 그대로 유지했다면 지금쯤 연봉 6000 정도 받고 그랬겠지. 아마도 바람직한 형태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내가 진해에 사는데 밤을 새고 부스스한 머리로 베란다에서 담배 피고 있으면 그 앞 조선소에 아침 7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사람들이 쏟아졌다. 그 사람들이 나를 보면 뭐라고 했을까? 문학을 안 했다면 그런 사람들이 되어 있었겠지.
박: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상태가 안 좋긴 해도 나는 뇌가 있다. 2MB는 넘고.(웃음) 책도 안 보고 책을 잘 모른다 해도 음악은 듣겠지. 결국엔 모를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천: 나는 직장 생활을 참 오래 했다. 군대 제대한 이후에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탈했다. 평범한 생활을 하다가 나이 서른한 살에 갑자기 ‘이게 내 삶이 아닌 것 같아’ 하고 직장을 때려치고 충무로 영화판에 들어가 10년 살다가 문학을 하게 됐다. 문학은 창작의 한 방법이었다. 영화와 문학이 다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전의 직장일은 그야말로 먹고사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일탈의 길을 걸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한다. 그 때 직장 생활을 잘 했다. 나는 대학을 안 나왔는데,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영업밖에 없다. 영업을 잘 했다. 그래서 그때 돈도 잘 벌었다. 그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 꾸준하게 직장 생활을 했었다면. 위기도 있고 인생은 어느덧 지루해지고 여러 가지 일도 진행되겠지만.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그렇게 40대 중반의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40대 중반의 가장으로서의 평범한 삶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