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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뇌당하지 않는 인간 따윈 세상에 없어

by khany 2008. 2. 22.

그것이 <부기팝>의 세계관이다.
세계의 의미는 없고, 성장해야 할 의미는 더더욱 없다. ‘옆에서 친구가 웃고 있다’ 뿐이다.

<부기팝>에서 성장이란, 어쩌면 세뇌에 불과한 것이다.
자아와 감정을 잃고 시스템의 ‘단말’이 되도록 세뇌되는 것.
이것이 <부기팝>에서 가장 두려운 악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 기분도 가짜로 조작된 것인가’라며 두려워하는 주인공에게 부기팝은 단정적으로 말한다.
“자네는 자기의 의지라고 확실히 정하고 행동한 적이 있었나?
사회에 적응하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는 사회의 형편에 맞추어 세뇌당해 있다는 뜻이야.
다른 점은 자네처럼 세뇌시킨 상대가 확실치 않다는 것뿐이지.
세뇌당하지 않는 인간 따윈 세상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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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나의 의지라고 확실히 정하고 행동한 적이 있는가?
어떤 행동을 할때 언제나 아니 가끔이라도 그래 결심했어 하고 하는 행동이 있었나?

사람이 사회화 된다는 것은 이젠 내버려둬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신이 조절해 버린다는 것은 아닐까? 가다가 변의를 느낀다고 해서 지금은 중세의 유럽에서 처럼 아무데서나 까고 변을 보진 않는다.
이것은 사회화 인가? 세뇌인가?
그 시대와 사회에 맞는 규범과 틀, 제한이 있다.
그것은 더불어 살기 위한 방편일까? 세뇌일까?

한 쪽으로 몰아 주면 다 세뇌 같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가치관과 현대 사회의 가치관은 다르다.
사회는 변화해 왔다. 패러다임은 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세대마다 다른 세뇌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단 말일까?
혹시 그 세뇌의 주체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행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같은 시기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모여서 하나의 에너지를 형성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패션이나 트랜드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완벽하게 독창적이며, 독보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나마 조금 다르게, 좀 더 희귀하게...
단지 그것뿐인 것은 아닐까?

아는 게 없군...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내가 죽는다는 것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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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도에 뽑아놓은 글이었다.
다시 들여다 보자니 역시 ...

세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프로그래밍 하는 인간고 프로그래밍 되어지는 인간.
나는 과연 어느 쪽인가?

어떻게 하면 나만의 독창적인 자유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세뇌한 자는 드러나지 않고 세뇌당한 자들만이 모여서 살고 있다.
미디어를 지배하는 자가 프로그래밍하는 자일 것이다.
우익이 그렇게 미치도록 원하는 권력의 하수인으로 조,중,동을 십분 활용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