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꺼

‘당장 변화’ 아닌 ‘가능성’ 보고 도전!

by khany 2008. 5. 27.
‘당장 변화’ 아닌 ‘가능성’ 보고 도전!

공대졸업 현대車 입사 → 韓·美 방송통신대 졸업 → 美 변호사 자격 획득

지난 12일 경기 산본시에 사는 주부 신민아(30)씨로부터 한통의 e메일을 받았다.

“공대 출신으로 대기업에 다니면서 저녁에 짬짬이 공부해 토익 200점 향상, 한국과 미국의 법대 졸업증 2개,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 기간 중 두번이나 우수사원상까지 받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남편의 이야기는 자기계발을 하고자 하는 많은 직장인에게 도움과 격려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신씨의 남편은 경기 화성시의 현대자동차 연구개발총괄본부에 근무하는 김승도(37·사진) 과장이었다. 연세대 공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한 김씨는 1996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고, 11년째 특허팀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에 직접 가서 현지 로스쿨을 이수하고 미국변호사 자격을 딴 한국인은 여럿이 있지만, 국내에서 미국 방송통신대 과정을 통해 패스한 사람은 김 씨가 지금까지 유일하다.

14일 만난 김 씨는 머리를 싸매고 공부만하는 노력형이나 출세지향의 수재형일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을 보기 좋게 벗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일과 직장을 사랑하지만 가족, 특히 아내에 대한 애정이 넘쳤고, 직장 선후배·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며 떠들기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 계기

현대자동차 입사 후 특허부서에서 일해보니, 대학 때 배운 공학적 지식 이외에 상당한 정도의 외국어 능력과 법률적 지식이 필요했다. 영어는 어느 정도 수준(토익920)까지 올렸으나, 법률적 지식이 문제였다. 그냥 법률책을 놓고 공부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목표가 필요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미국 특허변호사였다. 대부분 특허분쟁은 미국특허를 놓고 싸우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한국과 일본 기업이 특허분쟁을 하더라도 그 대상이 되는 특허는 미국특허며 소송도 대부분 미국에서 발생한다. 이런 분쟁에서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미국특허변호사다. 미국특허변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이 미국변리사(Patent Agent)와 미국변호사(Attorney)다.

우선 미국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현실은 쉽지 않았다. 미국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3년과정의 미국 로스쿨(JD)에 진학할 필요가 있는데 그 유학비용으로 3년간 적어도 1억5000만원에서 2억원이 필요했다.

◆ 한국과 미국의 방송통신대 입학

국내 법대 졸업증이 있으면 나중에 미국에서의 유학기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1999년 한국방송통신대 법대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공대 출신인 내게 법공부는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결과가 좋아 학비전액 장학금도 받고 졸업 땐 성적 우수상도 받았다.

한국에서 법대 졸업증은 받았지만, 미국변호사에 도전하기는 수월치 않았다. 비용 문제와 회사를 그만둬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그때 우연히 알게 된 것이 미국의 방송통신법대(Correspondence Law School)였다. 학비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으로 유학 가는 것보다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직장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미국의 정규 법대는 3년 과정이지만 이 과정은 4년이다. 또 한가지 다른 것은 1학년이 지나면 ‘First-Year Student Exam’(FYSE)을 통과해야 2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1년이 지난 2001년 회사에 1주일 휴가를 내고 FYSE시험을 보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갔다. 과목은 3과목이지만 법대의 중요과목이고 형식도 정규 변호사 시험(Bar Exam)과 같아 일명 ‘Baby-Bar Exam’이라고 불릴 정도로 녹록지 않은 시험이다. 결과는 운이 좋았는지 합격! 이 시험 후에 법 공부에 자신이 붙었고 나머지 3년 과정은 별 어려움이 없었다. 2004년 9월 졸업장을 받았다.

◆ 시련과 도전… 또 도전

졸업 후 당연히 2005년 2월 미국 변호사시험(2월과 7월에 두번 있다)을 볼 수 있을 줄 알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캘리포니아에서 변호사 시험을 보려면 응시자의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o.)를 제출하라는 거였다. 한국에서 통신으로 공부한 내게 이 번호를 받을 방법은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지난 몇년간 준비했는데 시험도 보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다니….

그러던 중 2005년 말에 기쁜 소식이 들렸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사회보장번호 관련법의 예외규정을 가진 법안에 사인을 했다는 것이었다. ‘터미네이터’가 이렇게 날 도와줄 줄이야.

7월 시험까지 약 3개월 남은 시점. 1년간 미국법 공부를 놓고 있었고, 공부할 과목은 14개 과목. 차라리 다음해 2월 시험을 보려고 했지만 아내가 경험 삼아 보라고 격려해 줬다. 시험을 보기로 했다. 퇴근해서 도서관 책상에 앉으면 오후 9시, 그 때부터 밤 12시까지 공부, 그리고 집에 가서 다시 오전 2시까지 공부, 새벽 6시10분 기상, 출근. 하루 4시간 자는 생활이 이어졌다.

아내를 보는 시간은 아침에 20분 정도였다. 밤에 집에 들어와 혼자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하고 갈등도 많이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웃을 날이 오겠지 하며 버텼다. 다시 회사의 휴가기간을 이용해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11월에 결과가 나왔는데 예상대로 불합격.

2월시험까지는 약 3개월. 다시 4시간 수면 생활의 시작. 친구들에게는 ‘다시 잠수탄다’고 얘기했다. 3개월여 간의 이런 시간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시험을 보러 갔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공부만 한다는 것이 미안해서 나로서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 합격 그리고 일상

지난달 말 결과를 확인할 때 얼마나 떨렸는지…. 떨어지면 다시 만삭의 아내를 혼자 두고 독서실에 처박혀야 한다는 것이 끔찍이도 싫었다. 그러나 다행히 결과는 합격! 누구보다 기뻐하는 아내의 눈물…. 아내의 눈물을 보고서야 정말 뭔가 해낸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계발을 통해 얻은 것은 요즘처럼 한가하게 아내와 보내는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 점이다. 그냥 평범하게 세월을 보냈다면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함을 몰랐을 것 같다. 미국변호사 자격증을 땄다고 해서 당장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처럼 출근해서 전에 하던 일을 계속 한다. 그러나 나 자신에게 뭔가 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고, 변호사 자격증이 내 일에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준 것에 만족한다.

진짜 미국특허변호사가 되기 위해 기회가 되면 미국변리사에도 도전해 보려 한다. 일본어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기업실무와 이론(자격)을 두루 갖춘 진정한 전문가가 되고 싶다.

정리 =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