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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가 말하는 문장을 쓰는 법

by khany 2008. 12. 18.
오늘 도서관에 갔다.
빌리려고 했던 책 아리스토 텔레스의 『시학』을 빌리고,
처음엔 그냥 나오려고 했다.

발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기 보단,
아쉬움에 덜미를 잡힌 채
자주 기웃거리던 서가로 성큼성큼 나아가졌다.

그냥 가볍게 읽을 만한 걸로 하나 더 빌려가지 뭐. 라고 생각하는데
내 손은 벌써 하루키를 집어들고 있었다. 이번엔 수필집이다.
역시 김난주씨가 번역을 했다. 하루키에겐 그녀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하루키가 내게는 가벼운 『읽을거리』만은 아니다.
그에겐 나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
내가 나약해질 때 나를 달리게 한다.
내가 포기하려할 때 다시 일어서게 한다.
읽고 있으면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하루키 얘길 하자면 또 한 참 주저리 거려야 할테니 이것도 여기까지만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이제야 겨우 본론이란 말인가?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미안하다. 서설이 길어서....그래도 어쩌랴. 여긴 내 블로그란 말이다...ㅋㅋ

  「문장을 쓰는 법」

  장래 글을 써서 연명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젊은이들로 부터
종종 '문장 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
는다. 나 같은 사람한테 물어본들 별 뾰족한 수가 없을텐데 하고
생각하는데, 뭐 좌우지간 그런 일이 있다.
  문장을 쓰는 비결은 문장을 쓰지 않는 것이다.

...중략...

요는 문장 운운은 나중 일이고, 어찌됐든 살아가는 일밖에 없다.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대충 같다.

...후략...


책 전문을 옮길 생각은 없고, 저작권도 그렇지만 사거나 빌려서 읽어보라.
재미있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장래 글을 써서 연명하리라. 그렇다. 이거다.
내가 지금까지 바래왔고, 다시 학교라는 걸 다니면서 까지
하고 싶고, 해보려고 하는 게 바로 이거다.
글을 써서 연명하는 것.

빨리 떠서 좋은 소설이 하나 대박이 나서 평생 그 한편으로 먹고 사는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죽고 나서 그 가치가 재평가되고 이름이 드높아져서
세기를 넘어 두루두루 방방곡곡에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매일 매일 내 몸을 움직이고, 내 손을 움직이고, 내 머리를 들이대어
내 글을 만들어 내는 것. 세상에 나밖에 만들수 없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세상 어딘가에서 내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을 플롯을
찾아서 조금씩 조금씩 나를 통과하여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것.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는 글,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글, 다시 읽어보면 또 뭔가가 다른 글,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위로하고
꿈꾸게 하고 행복해지게 하는

글을 써서 연명하는 것...이 내 바램이다.

여기에 하루키는 문장을 쓰는 비결은 문장을 쓰지 않는 것이다. 라는
선문답 같은 답을 주고는 뒷부분에 가서는 살아가는 일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다.

어찌됐든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

그렇다.
어찌됐든 살아가는 거다. 살아내는 거다. 삶을 살아내야 한다.
어떻게 살아낼 건가? 하는 것이 내가 글을 쓰는 방법이겠구나 싶다.
난 즐겁게 여유있게 쓰고 싶다. 매어달려 미친듯이 쓰고도 싶다.
자유롭게 쓰고 싶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빈둥거리면서 쓰고 싶다.
그래 마냥 쓰고 싶다. 하루는 한 달은 아무것도 안하고 마냥 놀면서 쓰고 싶다.
일이 되어 스트레스 받으면서, 기한이 쫓기면서 쓰고 싶다.
일년을 꼬박 말 한마디 안하고 머리 푹 숙이고 자기 세계에 갇혀
미친듯이 쓰고 싶다.

무엇을 쓰고 싶은 지도, 어떻게 쓸 것인지도 안 정해졌는데 어쩌지?
내게 재능이란 게 없으면 어쩌지? 마냥 줄창 습작만 하다가 뒈지는 건 아닐까?
어디 내 주제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 생각들이 자주 들어와 나를 괴롭힐 때도
나는 살아가는 길밖에는 달리 할 것이 따로 없는 것이다. 여기서 뒈질게 아니라면...

나는 살아가는 일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이다.
지금 이 생(生)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글쓰는 일뿐이라는 생각이다.
결국은 지금까지 삶도 모두 이것을 위해서 존재한 것은 아닐까?

내가 내 꿈을 잊지 않게 하려고, 삶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것일지도.
다시 한번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보기로 하고 새로운 출발점에 있다.
더이상 타고난 재능 같은 것은 내게 의미가 없다.
어린 날엔 그렇게 중요했던 그것이,
지금은 있거나 없거나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았다.

없다면 없는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지금을 살아가는 일밖에 없다.
지금을
글을 쓰면서
나를 들여다 보면서
허구를 창조하면서
지금을 살아가는 일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