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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그리고 페드라 1962

by khany 2008. 2. 27.
Yes24의 칼럼 정혜윤PD의 침대와 책 중에서

* 침대와 여행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 1940~)

어느 날 홍대 앞 리치몬드 제과점에서 식빵 냄새를 맡으려고 내가 막 몸을 구부릴 때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가 흘러나왔고 나와 동행했던 노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토카타와 푸가가 가장 강렬하게 나온 영화가 뭔 줄 알아? 바로 <페드라>야. 의붓어머니인 페드라와 정을 통한 아들은 스포츠카를 타고 절벽 밑으로 죽음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지. 그때 나오는 음악이 바로 토카타와 푸가야. 페드라! 여자의 이름을 절규하듯 뱉으면서 차가 공중을 날아오르는 순간 오르간이 폭발적으로 울리지, 아주 대단한 장면이지.”

노교수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영화 <페드라>의 흑백 장면과 안소니 퍼킨스의 눈동자와 함께 다치바나 다카시를 생각했다.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독서광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의 여행칼럼 모음집인 『사색 기행』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토카타와 푸가를 듣고 눈물이 나올 만큼 감동한 것은 언제였던가? 줄스 다신의 영화 <죽어도 좋아(페드라)>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 영화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히폴리토스를 현대 상황으로 바꾼 것이다. 안소니 퍼킨스가 연기하는 아들이 헤어날 수 없는 운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죽음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그 장면이 시작되자 문득 토카타와 푸가가 시작된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 장면 이야기를 한 것은 그가 마드리드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에서 기습적으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듣던 순간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문득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울리기 시작했다. 무슨 의식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고 오르간 주자가 그저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거대한 음향 공간이 통째로 오르간에 공명하여 울리고 있어 마치 내가 오르간 속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바흐였다. 토카타와 푸가였다. 왠지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흘렀다. 그때 내가 왜 울었는지 설명하라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그냥 저절로 그런 것이다. 일상성을 뛰어넘은 곳에서 일어난 감정의 분출이라고 할까? 지금도 그 일은 내 인생의 신비한 체험 가운데 하나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

홍대 앞 리치몬드 제과점과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은 내게 이런 식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나는 그 밤에 침대에 드러누워 『스페인사』라는 걸출한 스페인 역사책을 뒤적거렸다. 침대에 누워 다른 나라에 살았던 사람,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 나보다 먼저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나의 정신은 이미 침대에 속해 있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부유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의 최고의 여행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침대 속 상상 여행’이야말로 니체에게 보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하고 싶은 모습이다. 일찍이 니체는 “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일 년에 세 번 열매를 맺는,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칭송하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까지 침대 속에서 백 번도 넘게 여행을 갔고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을 만났고 백 번이나 다른 사람이 되어 왔으니 불쌍한 나를 사랑해 주세요. 니체.

Tocata & Fugue in D minor, BWV565
'푸가(fugue)'란 '뛰어 도망가다'라는 뜻으로, 하나의 성부가 주제를 이루면
뒤이어 모방 성부가 마치 응답을 하듯 전개되는 음악 형식으로 별도의 선율이
수평적으로 결합되어 조화를 이루는 대위법적(다성 음악) 악곡을 뜻한다.
이러한 다성 음악 중에 가장 유명한 곡이 바로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BWV565' 이다.
제목에 명시된 '토카타(toccata)'란 이탈리아 어로 '손을 대다'란 뜻으로
빠른 화음 분산과 화려한 음계적 경과구들로 이루어진 기교적,즉흥적 건반 형식의 일종이다.

따라서 이 곡은 말 그대로 '격정적 기교로 풀어낸 토카타'의 형식과
아름다운 선율의 조화를 이룩한 푸가'의 형식이 결합된 곡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스타일은 16~18 세기에 걸쳐 성행했는데,
'오르간의 전성시대'와 맞물려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한 때는 1709년으로, 24살의 나이에 불과했던 청년 바흐는
오르간의 성능을 훌륭하게 살려낸 시대의 명작을 일궈 냈다.
총 22개로 집대성된 '푸가의 기법'(Die Kunst Der Fuge) 중 백미로 통하는 이 곡은
젊은 시절 바흐의 개성과 자유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최고의 바로크 시대 명곡으로
현재까지 수많은 편곡 작품들이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페드라

Phaedra (1962)

감독 : 줄스 닷신 Jules Dassin
 
각본 : 줄스 닷신 Jules Dassin
          유리피데스 Euripides (원작 "Hippolytus")
          마가리타 림베라키 Margarita Lymberaki (시나리오)

장르 : 드라마

출연 :
멜리나 메르쿠리 Melina Mercouri ....  페드라
안소니 퍼킨스 Anthony Perkins ....  알렉시스
라프 발로네 Raf Vallone ....  타노스
엘리자베스 에시 Elizabeth Ercy ....  에시
올림피아 파파두카 Olympia Papadouka ....  안나
조르즈 사리 Zorz Sarri ....  아리아드네
안드레아스 필리피데스 Andreas Filippides ....  안드레아스
줄스 닷신 Jules Dassin ....  크리스토

음악 :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Mikis Theodorakis
촬영 : 자끄 나튜 Jacques Natteau
편집 : 로저 드위레 Roger Dwyre

러닝타임 : 115분
언어 : 영어 / 그리이스어
컬러 : 흑백
사운드 : 모노